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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부산의 겨울, 빛을 발하다…부산 트리축제 개막

'제10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점등식은 지난 1일 오후 7시에 시작했다. 하지만 개막선언과 내빈소개 등으로 20여 분 가까이 지나서야 점등 카운트가 시작됐다. "5, 4, 3, 2, 1, 점등!"
 
부산 중구 광복로가 환해지고, 인파의 감탄사와 군악대의 연주가 거리를 메운다. 내빈소개가 이뤄질 때만 해도 심드렁하던 사람들의 표정도 일제히 환해진다.
 
문득 광복로를 수놓은 수십만 개의 전구에서 무슨 주문이 걸린 전파라도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뭐에 홀린 듯 괜스레 거리의 젊은 남녀들이 모두 훈남 훈녀 같고, 생판 처음 본 남의 집 아이들도 이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다. 또 버스킹 가수의 샹송 노랫소리는 왜 이리 감미로운가.

거리의 모두가 적당한 알코올 기운에 취한 듯 미소를 품고 있는 것을 보아, 혼자만의 기분은 아닌 것 같다. 트리의 전구 빛을 쬐고 나서야 사람을 들뜨게 하는 연말 분위기가 실감 난다.

■걷기만 해도 가까워져요

축제의 시작지점은 광복로의 출발점인 도시철도 남포역 7번 출구 인근이다. 그곳에서 높이 20m의 범선 트리가 레이저쇼까지 뿜어내며 승선을 독촉한다. 여기서부터 400여m 떨어진 메인무대까지가 ‘부산 바닷길 이야기’ 코스다. 몇 발짝을 떼면 작은 관광안내소가 나오는데, 팸플릿을 받아보면 각종 빛 설치물의 의미를 음미하며 걸을 수 있다.

물론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머리 위 푸른 빛을 내며 넘실대는 파란 전구의 행렬은 누가 보아도 파도를 상징하고 부산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원을 적는 전자판도 있고, 빛을 내는 동물들도 꾸며져 있다. 곳곳에서 음악과 댄스, 마술 등 각종 버스킹 공연이 벌어져 걷는 재미가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 등엔 이 일대가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므로 어린 자녀와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부산 바닷길 이야기의 끝엔 메인무대가 나오고, 그곳엔 대형 트리가 5층 건물과 맞먹는 크기로 세워져 있다. LED 전구가 새해 덕담 메시지도 보내주고, 여러 형상물을 그려주기도 한다. 저 트리엔 몇 개의 전구가 쓰였나, 세어보기를 권한다. 한 번도 안 틀리고 1초에 2개씩 세면, 2시간 40여분 만에 2만여 개의 전구가 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참고로 축제 전체에 무려 60여만 개의 램프가 투입됐다. 전기세가 어마어마할 것 같지만, LED 전구다 보니 40여 일을 사용해도 전기요금은 500만 원 내외 정도라고 한다.

메인무대에서 대청동 쪽으로 꺾으면 ‘임마누엘의 장막’ 길이 펼쳐진다. 전통 문양의 조명들이 많은 르미에르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메인무대에서 부평동 방향으로 직진하면 ‘샤론의 꽃길만 걷자!’ 길이 나온다. 정말로 전구들이 꽃모양으로 배열돼 있는데, 왠지 로맨틱하다. 한 발작 떨어져 있던 썸남 썸녀도 꽃길만큼은 붙어서 걷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사람이 많아 떨어져 걷기 힘든 면도 있다.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는 내년 1월 6일까지 37일간 이어진다.

■부산의 겨울은 빛과 함께 오네

10돌을 맞는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는 겨울 축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지난해 이 축제를 800만 명이나 찾았고, 2014년 아시아도시경관상과 세계축제협회 금상 등을 받는 등 흥행성과 콘텐츠의 충실도가 입증되었다. 여름의 도시 부산 그것도 원도심에서 겨울 축제가 성공한 것을 두고 일대 상인들은 "이게 크리스마스 기적"이라고 뿌듯해한다.

2008년 광복로 일대 점포 상인 등은 인근 대형 백화점 개장 등으로 경영 위기를 걱정하게 됐고, 타개책으로 문화사업을 기획했다. 십시일반 1700만 원 정도의 돈을 모아 광복로에 트리와 램프를 달고 작은 르미에르 축제를 벌였다. 손님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이거다 싶어 상인들은 부산기독교총연합회와 손잡고 시비 5000만 원의 지원금으로 2009년 1회 축제를 열었다.

1회 축제가 입소문을 타서인지, 기적은 2회 때부터 벌어졌다. 축제가 시작한 날 오후 8시 즈음 일대 음식점들의 재료가 동이 났다. 부산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성공을 확인한 덕에 3회 때부턴 상인들 스스로 1억 원 넘는 돈을 걷었고 이후 시비와 구비 지원도 늘어나 지금같은 규모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왜 트리 조명을 보려고 이렇게 모여들까? 광복로는 찬바람이 불면 사람들이 빛을 그리워한다는 걸 알고 이를 지역 축제로 선점해 성공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축제인 프랑스 리옹의 빛 축제가 12월, 영국 런던의 르미에르 축제가 1월에 열리는 게 다같은 이유이다. 빛으로 만들어지는 형상들은 따스함과 로맨틱함을 느끼게 하니, 겨울의 빛 축제는 사람을 취하게 한다는 말이 마냥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2008년부터 축제에 관여한 광복로문화포럼 김태곤 사무국장은 "10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확실히 손끝이 시려지는 철이 와야 사람들이 빛에 감성적으로 반응을 한다"며 "춥고, 외롭고, 힘들 때 아름다운 빛은 위로감을 전해주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외에도 해운대 구남로 일대에서도 지난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제5회 해운대 라꼬빛축제’가 열린다. 은하수·터틀 돔·빛 파도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이색적인 조형물과 LED 조명쇼가 특색이다. 강서구 부산렛츠런파크의 일루미아 정원도 여느 때보다 겨울철에 방문해 보면 만족감이 높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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